신성한 수묵에 대(對)하여

작가 신영호의 동양화는 이 장르의 관객들이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알 수 없거나, 불편하거나, 실망스럽거나, 놀랍다는 감정의 면모가 섞인 반응이다. 동양화 혹은 한국화의 이해 공동체에 속한 관객은 극단적으로 볼 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한쪽은 그것을 전통적인 그림의 다른 이름쯤으로 생각하는 관객층이다. 다른 한쪽은 한국화단에서 진행되어 온 전통의 변형과 실험을 봐 온 관객이다. 두 쪽 모두에게 이 화가의 작품은 그들이 흔히 접하던 관습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좌표에서 낯설게 자리하고 있다.
논리상 신영호의 작업은 전통보다 혁신을 향하는 콘템포러리 아트이다. 그렇긴 한데, 이 작가의 미술 원류는 정통의 동양화론 속 설정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예술 이력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국으로 건너가서 서예를 익힌 것이다.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그가 매달린 주제는 서예와 회화를 비교하는 연구였다. 애당초 그가 동양화를 전공했으므로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회화와 서예는 상당히 다른 영역의 예술 체계다. 어쩌면 그는 서예를 통해 예술의 돌파구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유학을 떠나기 전에 당시 한 무리의 작가들이 비구상적인 수묵 작업에 몰두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 경향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때 품었던 의문을 스스로 답을 내리기 위한 선택이 중국행이었을 것이다.
그 물음은 이를테면 “동양화는 서양화라는 현대의 문화 우세종에 대항하는 진영인가? 아니면 서양화 속에 합병되어 서브 장르로 기능하는 부분인가?”, “이른바 추상이 구상으로 이룬 이미지를 최소한도로 제시한 방식이 서구의 개념이라면 동아시아에서 그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은 현대 속에서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러한 물음은 단순히 개인이 가지는 영역이 아니었고, 역사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문예적 운동이었다. 신영호 작가가 해답을 찾아 떠난 길이 실천이었다면, 그것은 예술과 인문학의 움직임이 작품과 수고(self-description)를 통해 실체화된 현재에 이르렀다.
신영호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적인 장치를 본인 작품에 연출된 장면으로 깔고 현대적 회화를 완성한다. 그게 뭔가 하면, 동양회화의 오래된 소재를 다른 것들로 갈아 끼워 넣는 방식이다. 여기에 그가 불러들이는 소재는 이미지 주변을 맴도는 관념체이다. 그의 그림에 곧잘 등장하는 한 가지가 개미다. 개미는 그의 그림에서 하나의 문자 형상과 대등한 존재다. 그것은 과거 문인화가나 산수화가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통한다. 동양의 선인들에게 대나무, 꽃, 산, 바위는 서구 개념에서 보자면 하나의 기호이자 조형의 단위였다. 전통적인 초충도의 계승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시도는 한편으로는 장난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모필을 써서 완성하는 개미 형상은 작가의 감성과 이론을 작품에 용해해 채우는 논리적 재투입(re-entry)의 방식인 셈이다. 이는 저마다 방식이 다를지언정, 동양의 회화와 서예가 공통으로 갖는 특징이다.
이러하듯 정교하게 설정한 개미는 동시에, 그의 미술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꽤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너무나 명확한 대상 그 자체인 소재가 가진 지시성 때문이다. 이 즉물적인 특성으로 말미암아 작품의 매력이 깎일 우려가 있더라도, 그건 처음부터 작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온갖 알레고리와 시각적 충격 요법을 강박적으로 고안하는 다른 많은 동시대 미술가에 비하면 오히려 곧고 점잖은 면일 수도 있다.
그는 본인의 수묵화를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으로 부르길 제안해 왔다. 이 용어는 서구적 개념으로써 드로잉을 액체상태인 먹물로 완성하는 과정을 강조한 말이다. 리퀴드 드로잉이란 말은 작업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돕지만, 모순적이며, 한편으로는 도발적인 표현이다. 여기에는 드로잉은 펜이나 연필로 그리는데, 그게 아니라면 드로잉이 아니라는 반 명제 논리가 따라붙는다. 또 다르게는 리퀴드 드로잉이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형성된 수묵화의 장르적 권위를 훼손하는 의미도 있다. 하나의 논쟁이 될 수도 있는 이 제안은 내 생각으론 두 가지 목적이 숨어 있다. 하나는 예술 형식은 박제화된 상태로의 답습이 아니며, 한국 현대미술에서 수묵의 영역을 재정의하려는 야심이다. 다른 하나는 쉼 없이, 그렇지만 본인의 작업관이 바깥 세계관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려는 작가 태도의 선언이다.
최근에 신영호 작가는 인장(印章)을 통하여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동양화에서는 대략 천년에 달하는 시간에 걸쳐 낙관이 전해져왔다. 도장 찍기는 동양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서명의 표식이었고, 미술 연구에서 그것은 고서화를 감식하는 유력한 근거이다. 그런데 인장이 부지불식간에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맞다. 인장 또는 도장에 관한 학술적인 연구는 예컨대 문화인류학과 농업경제학 같은 분과 학문에서 간간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현대미술에서 그 논의나 분석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실정이다. 이는 학문 연구를 담보로 창작을 수행하는 신영호라는 개인의 정체성에 들어맞는 시도이다. 고전 회화작품의 형식인 탓에 그 상투성을 현대미술에서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한 인장은 예컨대 가벼운 복고 취향의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기호와 조형성을 연구하는 또 다른 시도로써, 서예 연구와 리퀴드 드로잉과 연결되어 형성된 미술 실천의 결의이다.
윤규홍(오픈스페이스 배 아트디렉터/예술사회학)

‘리퀴드 드로잉’을 제안함 - ‘수묵’의 동시대성에 대하여

_들어가며

수묵(水墨)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친근한 용어이다. 여기에서 친근하다는 것은 긍정적 의미다. 한 폭의 수묵화는 우리(동아시아 한자문화권 미술인과 감상자)의 눈에 낯설지 않은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그런 익숙함 때문에 객관적 태도와 시각으로 수묵미술을 타자화 시켜 분석하거나 비판해 보기 어려웠다. 수묵은 그만큼 동아시아 미술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의 미술 유전자에는 이미 수묵의 감성이 들어있는 것 같다.
익숙하다는 것은 반대쪽에 서서 보면 신선하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현대는 사물이 급변하는 시대이고, 현대인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요청한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외부의 활력을 원한다. 오래된 액자에 걸린 한 폭의 수묵산수화는 현대인의 이러한 요청에 응답하는 대상이 아닐 수 있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꽤 오랜 기간을 수묵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담론을 접했다. 수묵의 유구한 역사성, 그 과정에서 축적된 정신적 의미, 수묵 표현의 구체적 특징 그리고 동시대 미술로서의 한국화, 한국 수묵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논의와 실천들을 보아왔다. 내가 목격했던 그런 논의가 지금의 나에게 무슨 의미를 남겼을까? 나는 한국화를 전공한 수묵미술의 당사자임이 분명했지만 ‘전통적인’ 수묵화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없었기 때문에 항상 한 발 떨어져 있는 관찰자의 입장이었다. 그러했기에 조금은 강 건너 불구경 같은 느낌이었고 수묵미술의 중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그런 논의에 흥미를 잃었다.
근래에 나는 다시 수묵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꺼내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최근 수묵을 나 자신의 중요한 숙제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탐구를 통해 수묵의 시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한편으로는 과거에 겪었던 출구를 찾지 못한 공허한 관념의 노동의 반복이 되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교차한다.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익숙한 20수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수묵의 역사성과 정신성에 대한 찬양에 그쳐서는 안 된다. 수묵에 대한 추상적인 이헌령비헌령식 논의를 경계해야 한다. 동시대 미술의 장에 수용 가능한 언어로서 수묵을 기술해야 한다. 등등의 문제의식이 이 논의에 선행되어 있다.
수묵미술의 동시대성 확보라는 관점 아래 이 글은 수묵에 대한 일반론적 이해, 수묵과 서예 그리고 회화의 연관성, 수묵의 심미성과 21세기적 심미의 관계성, 한국화와 한국미술의 문제 나아가 동아시아미술과 서양미술의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이라는 수묵에 대한 나의 제안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_수묵에 대한 일반론적 이해

먼저 ‘수묵’과 ‘수묵화’는 같은 개념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 두 용어는 대부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수묵이라는 개념은 수묵화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면밀히 규정해 보자면 ‘수묵화’는 수묵이라는 재료를 사용해서, 또는 수묵이라는 방법론을 적용한 회화를 말하지만, 수묵은 좀 더 넓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문제는 수묵화의 문제가 아니고 수묵의 문제이다. 간결하게 정의하자면 “수묵비엔날레는 수묵화비엔날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묵화만을 다룬다면 앞으로 어떤 미래지향적인 한국화의 문제를 제시할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이다. 수묵화와 수묵은 다른 개념이며 수묵비엔날레가 다루어야 하는 것은 수묵이다!
수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위해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해 본다. 기본적으로 수묵은 첫째는 물질로서의 수묵이고, 둘째는 역사적 의미체로서의 수묵이며, 셋째는 심미의식의 측면에서의 수묵이다. 편의상 이렇게 나눌 수 있지만 사실상 이 세 가지 관점은 서로 상보적이어서 완전히 분리해서 따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수묵의 심미의식은 수묵이 발현되는 물질적 특징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그것은 또한 각각의 시대에 따라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심미의식으로 형성되며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먹(墨)은 나무를 태우거나 식물성 기름을 연소시킬 때 발생하는 그을음을 모아 아교에 개어 굳혀서 만든 안료이다. 먹은 세상에 존재하는 입자로 된 물질 중 가장 미세하다. 주목할 것은 원래의 먹은 액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먹 자체는 미세한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 고체 알갱이다. 그래서 서양화의 소묘, 곧 드로잉이 고체로 된 목탄이나 흑연(黑鉛)으로 된 연필로 종이 위에 마찰을 일으켜 긋는 행위가 기본적인 작용이라면, 수묵은 먹의 미세한 입자가 물에 용해되어 종이의 섬유질 사이로 스며드는 작용이다. 드로잉과 수묵은 재료와 활용한 표현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물질적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매우 밀접함을 알 수 있다.
수묵이 종이에 스며드는 효과를 구체적으로 나타낸 표현은 중국 10세기 초 무렵의 중국 화가인 형호의 『필법기(筆法記)』에 나오는 ‘수운묵장(水暈墨章)’이다. 수운묵장의 약칭을 수묵으로 볼 수 있다. 필선 중심의 표현에서 수묵의 번짐 효과를 중시하는 기법이 처음 나타난 것은 당나라 때로 여겨지고 있다. 수운묵장의 ‘운(暈)’은 먹이 종이에 스며들며 번지는 효과를 적극 활용한 기법을 표현한 것이다. 번지기 효과는 앞서 언급했듯이 먹이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물질적 특징으로 인해 가능한 현상이다.
수묵 기법의 유행은 먹의 번짐 현상을 잘 발현시킬 수 있는 ‘선지(宣紙)’의 발달과도 밀접할 것이다. 또 당나라 장언원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는 “묵색(墨色)만으로 오채(五彩)의 효과를 이루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수묵이 발생한 초기의 언급으로 볼 때 수묵은 이미 단순한 재료나 회화방식을 지칭하는데 국한된 것이 아니라 수묵적 심미의식이 내재되어 있는 용어인 것을 알 수 있다.
수묵의 영문표기는 ‘Chinese Ink’, ‘Indian Ink’ 등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사용하는 잉크는 용액이다. 먹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물질이기 때문에 잉크라는 용어로는 먹의 특징을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수묵을 발음을 그대로 옮겨 ‘Sumuk’ 으로 쓰기도 하고, 수묵의 중국어식 발음인 ‘Shuimo’, 일본식 발음인 ‘Su-mie’로 표기하기도 한다. 수묵의 한글표기도 현대미술에서는 공식적으로 통일되지 않았다. 그러나 용액을 나타내는 ‘Ink’라는 서구식 용어로는 동아시아에서 공용되는 한자 표현인 수묵(水墨)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그러나 한편 어떤 표기가 올바르냐하는 판단에 앞서 수묵(Sumuk)은 한자문화권 이외에서는 완전히 이해되기 어려운 함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지금의 예술가가 먹이라는 물질을 재료로 이용하여 기존의 수묵화와 다른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냈다면 이 작품의 재료를 수묵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재료를 수묵이라고 했다면 그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의 수묵에 내포된 것 이외의 함의를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러므로 기존의 ‘수묵’이라는 표기는 먹을 이용한 현대회화의 재료 표기법으로 적절치 않다고 본다. 만약 그렇다면 수묵의 함의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_서예와 회화 그리고 수묵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동아시아 회화는 먹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러나 먹의 사용은 서예 유물에 있어서 연대가 훨씬 올라간다. 직물이나 종이가 생기기 이전에 죽간이라는 대나무를 재료로 하여 먹으로 글씨를 쓴 것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먹이 사용되었을까를 고증하려는 노력은 다소 무의미해 보인다.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물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먹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서예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만 존재하는 매우 독특한 조형예술이다. 문자기록이 있는 어느 문화권에서도 ‘쓰기’를 귀하게 여긴 전통이 고대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자를 화려하게 장식하거나이나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넘어 예술로까지 인식되었던 사례는 동아시아 외에는 없다. 전통시대에 서예는 문자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인만큼 지식층이 애호한 가장 높은 등급의 조형예술이었다. 한자문화권에서 서예는 일찍이 하나의 예술 분야로 인식이 되어 감상과 비평의 대상이었으며, 각 시대마다 새로운 서예 풍격을 만들어 냈다. 한자문화권의 서예는 수많은 참여자들의 심미의식이 투영된 예술이다.
나의 가설 중 하나는 “동아시아의 미술은 일찍이 회화에 서예가 침투된 결과물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서예’는 서예의 재료와 그 사용방법의 유사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닌, 회화에 서예적 인식, 그리고 서예적 방법론이 투영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미술에서 서예적 요소는 완전히 제외시킬 수 없는 불가결한 한 특징이다.

도판1. 서희/오대/부분

도판2. 문동/북송/부분

그런 점에서 서예에 대한 이해는 동아시아 미술의 근원적 이해를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회화의 제작에 있어서 서예적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두 점의 대나무 그림을 비교해 보자. 위의 두 그림은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오대시대 서희의 <묵죽>(도판1)은 매우 사실적이다. 먹을 사용하였지만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먹은 배경이 되기도 하고 명암을 암시하는 표현으로도 쓰였다. 오른쪽은 북송시대 문동의 <묵죽>(도판2)이다. 서희와 비교한다면 문동은 대나무를 재현하려 하기보다는 도식화하여 표현하였다. 대나무의 잎사귀나 가지의 표현은 서예의 필법을 따랐다. 이는 회화에 서예적 태도가 침투한 하나의 구체적인 예시이다. 그림의 대상 즉 대나무를 하나의 기호로 인식하고 그것을 서예적 필법에 적용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 표현은 구체적 상황을 재현하기 위함이 아니며 그린다는 의미보다는 쓴다는 행위에 접근해 있다. 송대의 서예를 설명하는 말로 ‘송상의(宋尙意)’라는 말이 있는데 송나라 서예는 그 뜻을 중시한다는 것으로, 여기서 뜻은 작가의 개인적 감성을 의미한다. 문동의 <묵죽>은 흡사 당시 서예와 같은 방식이어서 그린 이의 감정이입을 볼 수 있다.
화가는 객관적인 사물을 충실히 재현하는 수련을 통해서 화가로서의 기본적인 묘사능력을 기른다. “외사조화(外師造化) 중득심원中得心源)”이라는 말은 밖으로는 자연의 조화를 배우고 안으로는 마음의 근원에서 그 표현법을 구한다는 뜻이다. 객관적인 대상의 사실적인 탐구를 통해서 주관적인 사상과 감정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행위를 예술창작이라 일컬었다. 이런 과정은 ‘사의(寫意)’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원나라시대 조맹부는 회화와 서예의 연관성에 대해 구체적인 비교를 통해 서화용필동법(書畵用筆同法)을 아래와 같이 주장하였다.

돌은 비백(飛白)처럼, 나무는 주서(籀書)같이, 대나무를 그릴 때는 오히려 영자팔법(永字八法)에 두루 통해야 한다. 능히 이를 아는 자가 있다면 글씨와 그림이 본래 같음을 알 것이다.
石如飛白木如籀 寫竹還應八法通 若也有人能會此 須知書畵本來同

비백, 주서, 팔법은 모두 서예의 용어이자 개념이다. 위 글은 동아시아 예술가들이 인식하는 서예와 회화의 관계를 매우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조맹부의 <수석소림도>(도판3)는 이러한 서예적 필치의 회화이다.

도판3. 조맹부(1199~?), 수석소림도

수묵에 있어 모필(毛筆)은 서예와 회화 구분할 것 없이 먹과 함께 표현의 핵심적 도구이다. 동아시아의 붓인 모필은 서양의 붓인 브러쉬(brush)과 그 용도는 같지만 형태와 쓰임새에서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동양의 붓은 둥글게 묶은 붓털의 끝이 뾰족하게 모아져 붓끝이 하나의 점을 이루는 원추형이어서 하나의 붓으로 매우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서예와 회화의 붓은 모두 원추형 모필이다. 그래서 이 원추형 붓의 활용을 통해 단순한 선을 넘는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며 그러한 붓 활용의 숙련도와 개성에 따라 문자의 기록이나 대상의 표현을 넘어 그 안에 예술성과 생명력을 표현하는 수많은 풍격이 존재할 수 있다. 붓의 다양한 움직임은 동양의 시각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현대의 많은 미술가들이 회화와 서예의 밀접한 연관성을 활용한다. 특히 추상적 표현의 단서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 서예와 회화의 관계성에 대한 논의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대미술에서 표현의 단서가 된 서예적 영향은 비교적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이 위주였기 때문이다. 서예에서 보이는 자의적 필치에서 보이는 시각적 에너지는 타피에스의 <석판화>(도판4)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 작가들에게도 강한 영감을 주었다.

_수묵 심미와 동시대 심미의 거리

수묵은 모노크롬이다. 그런데 먹이 오색을 포함한다는 의식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오색(五色)은 눈을 멀게 하고 오음(五音)은 귀를 먹게 한다.”는 말은 『도덕경』에 나온다. 색채를 배제한 것은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우월한 가치로 여겼던 노장사상의 영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양의 고전에서 생성된 이러한 인식은 수묵 심미의 경향에 사상적 근원을 제공하였다.
10세기 중국 오대시대 화가인 동원, 거연의 산수화는 중국 회화사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그들의 그림은 당나라 때의 청록산수가 아닌 수묵산수로서 자연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담은 산수화의 진정한 출발이 되었다. 10세기에 이루어진 수묵과 산수의 결합은 수묵화와 산수화가 동아시아 회화사의 주류로 자리 잡는 시작이 되었다.
송나라시대에 이르러 산수화의 전성기가 펼쳐진다. 많은 대가들이 출현해 자신의 개성적인 산수화풍을 완성했다. 그 중 곽희는 자신의 창작경험을 집약한 화론인 『임천고치(林泉高致)』를 남겼고, 그의 진적인 <조춘도>(도판5)가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그는 운두준(구름 모양의 준법)이라는 기법으로 산수화를 그렸는데 산의 암석표현이 마치 구름과 같아 희미하게 나타나고 사라진다. 먹으로 표현된 암석은 서서히 흐려져 결국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여백’이 된다. 구름과 여백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먹이 점점 엷어지면서 여백으로 변하는데 이는 먹이라는 재료의 특징이 아니면 구사하기 어려운 기법이다. 그리지 않고 비워둠으로서 그려진 부분을 더욱 의미 있게 하는 여백은 동아시아 미술의 독특한 심미감이다. 비워두었다는 것이 없음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풍부한 상상과 암시, 여운을 가중시킨다. 여백은 공백이 아니다.

도판 4. 타피에스, 석판화

도판 5. 곽희, 조춘도, 북송

중국사에서 원나라(1271~1388년)는 한족(漢族)들이 이민족에게 지배당했던 고난의 시기였다. 지식인들이 관직에 나갈 수 없었고,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대적 고난은 오히려 문인화를 발전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그들은 당시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저항정신을 수묵으로 군자의 상징을 형상화 하였다. 그들의 그림에는 도가적이거나 유가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데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 그리고 절제된 먹의 쓰임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을 초월하는 느낌을 유도한다. 이는 시대를 극복하는 그들만의 방식이었으리라. 원사대가 가운데 한 명인 예찬은 먹을 마치 금처럼 아껴 쓴다고 해서 ‘석묵여금(惜墨如金)’이라는 말을 남겼다. 예찬의 이러한 심미의식은 이후 문인화를 추종하는 화가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수묵에 내재한 심미의식은 수묵이라는 관념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

려와 현재에까지 이른다. 사람들이 수묵의 표현을 찬양할 때 이러한 심미의식이 발동되어 어렵지 않게 서로 공감하곤 한다. 물론, 각자의 공감 정도는 문화적, 역사적 인식이나 취향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수묵에 내재한 이러한 심미의식이 현대의 미술에서도 수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수묵에 공감하는 계층에만 적용될 수 있는 심미성을 고수한다면 현대미술에 있어 오히려 수묵은 더욱 고립될 수 있을 것이다.
수묵에 대한 동시대적 논의를 위한 몇 가지 조건에 대해 열거해 본다면, 우선 수묵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의 매우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함의를 지닌 개념이라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 수묵의 지위에 대한 고찰을 위해 수묵을 가능한 세밀히 분석하고 해체해야 한다. 또한 수묵의 정의는 반드시 현대적 언어로 내려져야 할 것이다.

_수묵, 동양화, 한국화 그리고 한국미술

한국화의 문제, 한국미술의 문제, 수묵의 문제는 사실상 완전히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개념의 혼동은 종종 발생한다. 우리는 이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화와 동양화는 무엇이 다른가? 한국화는 한국의 전통을 계승한 그림 형식이고, 동양화는 동양적 사상이 깃든 그림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용어가 생성된 과정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동양화’는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라는 공모전이 조선총독부 학무국 주최의 관전(官展)으로 시작되면서 공모 분야의 명칭으로 처음 등장했다. 일제강점기였으므로 조선인과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모두 응모할 수 있는 명칭으로 동양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런 연고로 부여된 동양화라는 용어는 해방 후 한국화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근대기에 자리 잡아 20세기 후반까지 쓰였던 동양화라는 용어의 관습성과 한편으로는 한중일의 수묵화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동양화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20세기의 전통회화에 대해서 동양화와 한국화는 여전히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본문에서는 한국화라는 용어로 통일 한다.
중국에는 중국화, 일본에는 일본화가 있고 한국에는 한국화가 있다. 한국화는 중국화와 일본화와는 다른 성격이 있다. 전통회화를 일컫는 세 나라의 세 가지 용어는 모두 그 나라의 미술 전통을 계승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한국화는 20세기 근현대기를 거치며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중국화, 일본화와 차별된다. 결론적으로 한국화는 이런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전통미술을 계승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현대적인 미술 분야로서의 특징을 가진다.
20세기 서양미술의 도전을 수용한 새로운 한국화의 역사는 해방 후 미술대학이 생기자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1세대 한국화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화숙(畵塾)의 도제식 교육을 벗어나 대학의 정규과정을 통해 한국화를 배웠고, 전통미술의 계승과 발전의 개념을 훌쩍 넘어 현대미술의 한 분야로서 한국화를 발전시켰다. 이들은 추상으로 대변되는 현대적 시도를 감행해 전통미술이 아닌 동양화(한국화)를 정립시켰다.

도판 6. 서세옥, 0번지의 황혼, 1955, 한지에 수묵담채, 99×94cm,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화를 포함한 한국미술은 서양의 새로운 미술 사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한국성을 드러내고 그 내용과 당위성을 담지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한국적인 소재, 색감과 표현에 대해 연구했고, 그것을 우리의 전통과 연결하여 창작의 정신적 근거로 삼고자 하였다.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확보는 당시 매우 절실한 문제였다. 수묵은 한국화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한 방법이었다.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의 예술을 ‘비애의 미’로 규정한 바 있다. 그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한국미술의 원형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졌다. 이후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매우 치열했다. 세계 미술의 조류와 함께 하려는 한국미술계의 노력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종의 추종이라고 할 수 있을 그런 방식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여기 우리 각자의 모습이 바로 한국성 자체이다. 물론 반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 또다시 한국미술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는 정중히 거절하고 싶다.
한국미술에 대한 지나친 정체성 논의는 오히려 한국의 미술을 우리의 민족성 안에 가두는 작용을 할 것이다. 현대미술의 역사는 예술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궁극적인 지점에 이르렀고 우리는 새로운 단서를 모색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다. 또 다시 지엽적인 관점에서 수묵을 운위하는 노동의 낭비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_동양· 서양의 문제 그리고 드로잉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 구분은 아직도 유효한가. 동양과 서양에 대한 구분의 근원은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유럽 중심의 세계를 서양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극동 문명을 동양으로 지칭하였으며 이 중 동양은 고대 중국에서 발원한 문화와 문명 및 한국, 일본 등에서 함께 발전한 전통적 문화를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물론 급속도로 글로벌화 된 오늘에도 동서양의 구분은 여전히 존재하며, 여전히 우리 자신을 인식하는 유효한 기준이다. 하지만 나는 동서양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은 양자 간의 차이와 다름이 아닌 유사성과 보편성에서 우리 자신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동양은 서양과의 비교라는 방식으로 타자와 나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동서양의 관계를 연구하고 세계의 진실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적지 않은 오해를 생산했다고 본다. 서양과 동양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전제 하에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지엽적 시각을 얻었고, 동양은 일원, 서양은 이원식의 일반화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서양과 동양의 예술 개념에 대한 발생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 새삼스러운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 자각하게 된다. 서양의 예술전통은 르네상스를 그 출발로 삼는다. 서양에서는 이 시기부터 예술과 예술가들이 탄생한다. 서양의 르네상스와 비견될 수 있는 동양의 시기는 남북조시대이다. 이 시기에 동양에서 진정한 예술가들이 탄생했고 예술의 역사가 출발한다. 그 출발점만을 비교해 본다면 동양이 서양에 대략 천년 정도 앞선다. 항상 서양을 배우고자 했던 동양의 미술계에서 다시금 사유할 문제이다.
이런 점이 오늘 우리가 ‘수묵’에 기대하려는 이유일까. 오늘 우리는 서양의 현대로부터 부여 받은 동기가 궁극적으로 고갈됨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현재 수묵이라는 잠시 잊혀졌던 하나의 거대한 흐름의 회복을 통해 또 다른 동기를 기대하는 것인가. 수묵은 천년이 넘는 역사의 큰 강물과 같다. 우리의 삶의 형태와 방법은 달라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거대한 흐름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거대한 전통이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도판 7. 정선, 인왕제색도, 1751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고, 민화의 소중함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러한 우리의 반성은 충분치 않다. 그것이 우리가 현재 수묵을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수묵은 하나의 거대담론인 동시에 우리와 매우 밀접한 하나의 도구였다.
<인왕제색도>(도판7)는 내가 주목하는 동양적 드로잉의 하나이다. 동양의 산수화 전통을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정선의 작품을 포함한 조선의 그림 가운데 실제 풍경을 하나의 시점에서 재현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흡사 서양의 풍경화에서 볼 수 있는 시각을 보여주는 듯하다. 근대 이전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보면 매우 놀라울 정도의 획기적인 시도이다.

도판 8. 조영석, 수묵드로잉

도판 9. 피카소, 10세 때 연필드로잉, 1890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은 선비로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왕의 초상화 제작을 거부했던 고지식한 인물이었다. 그의 화첩에 자신의 화첩을 남에게 보이면 자신의 자손이 아니라는 엄중한 경고문은 당시의 명분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현대인은 잘 이해하기 힘들지만 자신의 철학이 매우 견고한 인물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지식인으로서 늘 사용하던 붓을 회화도구로 활용해 말을 돌보는 동자를 매우 정감 있게 그려냈다(도판8). 그의 모필 사용은 서예의 훈련으로부터 비롯된 어떤 엄격함과 규칙에 구속됨이 없다. 먹의 사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언급했던 어떤 수묵의 심미의식으로부터도 구속받음이 없어 보인다. 그의 수묵화는 현대적 시각으로 본 드로잉과 부합한다. 이 소박한 드로잉은 수묵을 이용하여 현장감과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물을 관찰하고 그 대상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는 원초적인 행위로써의 드로잉이라는 점에서 수묵이라는 별도의 개념이 전혀 필요치 않다.

_리퀴드 드로잉의 제안과 수묵의 동시대성

작가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나의 예술세계는 감상자들과의 소통을 필요로 하지만 그 공감대는 작가 고유의 주관성에 기반 한다. 이 장에서는 수묵을 조형언어로 삼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작가의 입장에서 수묵에 대한 담론을 다루고자 한다.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은 내가 2011년부터 진행한 작업의 주요 테마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액상이라는 뜻의 리퀴드(Liquid)와 소묘인 드로잉(drawing)의 합성어로서 ‘수묵(水墨)’을 해체적인 방식으로 재구축한 용어이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 의도한 것은 ‘수묵’이라는 동양미술의 중심으로서의 ‘관념’을 극복하기 위함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동서의 관념의 충돌과 융화되는 상황에서 생성되는 사유를 창작의 모티브로 삼기 위함이었다.
리퀴드 드로잉은 수묵에 연결되어 있는 관념들과 선입견을 거부함으로써 전통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환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여기서 환기란 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관념이라 여기는 어떤 것을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 역사적 함의에 대한 사유는 현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력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고 수묵의 새로운 실체를 보기 위해서라도 ‘수묵’이라는 용어의 관념을 제거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선행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리퀴드는 수묵에서 물이라는 물질적 특징을 의미하기도 하고 유연한 사고를 의미하기도 한다. 드로잉이라는 용어는 당연히 서양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긋는다’는 회화의 근원적 의미를 함축한다. 명말청초의 문제적 인물인 석도는 예술창작의 근원으로 ‘일획(一劃)’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을 통해 우주만물의 근원적 문제까지 설명했다. 『고과화상화어록』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노장사상을 근거로 하고 있으나 그것을 자신의 실천적인 예술론으로 풀어냄으로서 현대 미학에서도 주목되고 있는 바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드로잉은 사유를 기록하는 행위이다. 전통적인 드로잉은 목탄이나 연필 등을 사용했지만 수묵의 방법론과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표현재료의 경도의 차이 즉, 딱딱한 상태에서 사용되는가 또는 리퀴드한 상태로 붓에 의해 사용되는가의 차이 뿐이다.

도판 10. 신영호, Liquid drawing 12, 165X103cm, Ink on paper, 2011

도판 11. 신영호, Liquid Drawing_Hangari04 30.3X162.2cm, 도자, 2021

그렇다면 리퀴드 드로잉은 동양적 방법론인가 서양적 방법론인가? 수묵적 의미와 드로잉이라는 형식은 동양과 서양의 대비된 의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개념을 대비적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근대의 동양은 서양과의 차이를 통해서 스스로를 인식했고 차이를 생산해야만 생존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동서양의 보편성을 보게 되고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서양인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의 미술가들 또한 시누아즈리나 자포니즘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다. 이는 나의 작업인 (도판10)의 소재이기도 하다. 현대의 많은 서양 철학자들은 동양의 사상을 서양적 언어로 해석하고 역사가들은 동양과 서양이 오래전부터 분리되지 않았음을 증명하였다.
리퀴드는 사고와 함께 방법의 유연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의 도자작업 (도판11)는 리퀴드 드로잉의 한 유형이다. 고령토 위에 그려진 유약이 가마의 고열 속에서 녹아 융화되는 과정은 흡사 먹과 물이 종이 위에서 번지는 상황과 비교할 수 있는데 최후의 결과를 제작자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도판 12. 신영호, Liquid Drawing_Hangari05 130.3X162.2cm 2021

리퀴드 드로잉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용어이다. 수묵을 드로잉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아직 사회적 동의를 받은 바 없다. 서양과 동양의 이분법적 구분을 비판하면서도 그러한 개념을 통해 자신을 설득하려고 하는 이율배반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근대화를 통해 동아시아의 전통문화는 대부분 단절되었다고 인식한다. 예술은 말할 것도 없고 삶과 사고방식을 포함한 모든 것이 전통적인 것과 거리가 생겼다. 우리는 지금 현재에 맞는 지혜를 자신의 전통 속에서 찾는 숙제를 해야 한다. 우리는 급속하게 서구화되었고, 절박한 요구로 현대화되었고, 지금 현재는 미래를 향한 또 다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변화는 필연이지만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시야는 필수이다. 그것을 잃은 것은 아닐까.
오늘의 수묵이 동시대의 살아 있는 미술로 부활하려면 현대인들의 비판을 기꺼이 받아야 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반성할 수 없는 ‘수묵’은 동시대미술이 될 수 없다. ‘리퀴드 드로잉’은 수묵에 대해 내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이 글을 통해 이 시대의 예술가로써 유효한 하나의 질문을 얻을 수 있다면 나름의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 영 호 개인전 'Liquid drawing’

● 전시개요
전 시 명: 신영호 개인전 'Liquid drawing’
전시기간: 2017. 5. 10 ~ 5. 21.
전시장소: 대구 봉산문화회관 3전시실
전시개막일: 2017. 5. 10. ( 수 ) 오후5시
연 락 처: 신영호 (010-8943-1397)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신영호의 전은 지금까지 그가 추구하는 수묵을 통한 작품세계로 대변된다. 리퀴드 드로잉은 ‘리퀴드’(Liquid: 액상)와 ‘드로잉’(drawing: 소묘)의 합성어로서 동양회화 가운데 주류를 이루는 수묵을 해체적이고 주관적인 방식으로 설명한 조어이다. 수묵의 주재료인 먹(墨)은 식물성 물질을 연소시켜 생기는 그을음과 동물성 아교를 섞어 만든 입자콜로이드이다. 먹은 수묵화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기록에 이용되었던 재료인데, 매우 작은 입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물(水)이라는 매질과 함께 활발하게 확산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잘 번질 수 있고, 매우 섬세한 농담의 단계를 보여주는 특징을 말한다. 이러한 표현적 특징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회화에 활발히 활용되면서 자연을 표현하는데 있어 도가의 ‘玄’개념과 연관되어 인식되거나 유교적 문인정신 혹은 불교적 세계관 등의 정신성을 내포한 재료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리퀴드 드로잉은 이러한 고정적 관념들을 배제하고 그 물성이 갖는 특징에 집중함으로써 수묵에 대한 확장된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고전에 나오는 장자의 언급 가운데, “道는 땅강아지에도 있고, 개미에도 있고, 벽돌에도 있고 대변에도 있다”는 말이 있다. 도는 아주 하찮은 미물 즉 개미에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개미를 관찰해보면 매우 정교한 몸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그 구조에서 문자의 구조를 발견하였다. 전시장 벽면에 개미 그림은 그에게 큰 서예작품이다. 신영호는 그의 화폭에서 개미의 몸을 빌어 문자의 구조와 서체적 표현을 구현하고 있다. ‘쓰다’와 ‘그리다’는 두 가지 개념은 동양회화를 이해하는 매우 핵심적인 내용이다. ‘회화’ 혹은 ‘미술’이라는 근대적 용어가 등장하기 전의 ‘書畵’라고 용어는 이 두 개념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개미의 형상은 바로 ‘그리다’와 ‘쓰다’는 개념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여기서 재해석된 드로잉의 의미는 ‘쓰다’와 ‘그리다’의 포괄적인 의미, 즉 ‘긋다’는 원초적 행위에 대한 주목에 있다)

본 전시에서는 ‘리퀴드 드로잉’개념을 통해 수묵에 대한 건강한 해체를 시도함으로써 수묵의 근원적인 의미와 동시대적인 의미에 대한 사유의 미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줄 것이다.




Character Water-ink Painting on Works of Shin Young Ho
Wang chunchen(2008-10-15)

What is water-ink? How is the connections between water-ink and nowadays? What kind of visual experience does water-ink bring to us? Has the relationship between water-ink, culture and psychology become weak? Or how’s the impossibility of development of water-ink? These maybe only theoretic imaginations without pointing to any specific water-ink creations, but this can’t prevent critics from expressing their opinions toward the whole map of water-ink.
On water-ink, one may sigh and say that its history is so long that there are countless traditions and skeletons nowadays since too many water-ink painters could show off their master’s prestige.
It seems that there has been an insurmountable wall for water-ink has its own source and history. Water-ink seems to be silent, to be no more fashionable without entering the sight of public audiences any more. Be highly alone or descended desperately, perhaps entertainment of water-ink is more or less expending its audiences or a unique preserving program. Therefore, water-ink seems to have encountered an embarrassing situation, which is not resulted from no-efforts or maltreating by people but depends on our generation’s attitude toward water-ink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culture and it. Then, does water-ink only exist in the middle? Absolutely not.
Korea, as an oriental country, there are also a plenty of artists favor water-ink, which is worthy of discussing. Korean artists focus on variations while Chinese artists concentrate on heritage. In other words, artists in China learn water-ink starting from history whereas artists in Korea paint water-ink from their mind, with different techniques leading to their own advantages. As to the common things on water-ink, oriental countries all need deep thinking to explore new chances for water-ink, which is not impossible but needing to establish capacity for visual express today, that’s to create again and again, not sticking to the history.
In this way, there will be different understandings and techniques for water-ink. Korean artist Shin Young-ho had studied water-ink painting in Korean painting Department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before coming to China to further-study water-ink in Central Academy of Fine Arts to grasp different feeling and inspirations. He eliminated squares of brush-inks to express the strength of brush by the painting of characters. Here, water-ink in not only counterdraw or mountains, rivers, flowers and birds in sketches or bodies of portrayed persons but as a medium which could be like slow ditty or sorrowful songs, and be plain and simple or complicated and heavy, integrated with life experience and the artist’s own understandings without constrained by stereotypes.
As a result, it’s possible to understand water-ink painting of Shin Young-ho from following perspectives. First, the artist came from a country also with history and traditions of water-ink painting while he doesn’t highlight particularly a Chinese meaning of water-ink but to apply it to convert it into a medium, second, metaphysically, the value of water-ink expressions, not empty words. Shin Young-ho has utilized calligraphy bravely in water-ink paintings where characters become part of painting, not a simply plus to it. From this point of view, his paintings are no longer old-fashioned or simply popular, especially he is no longer limited to oriental traditions of water-ink but integrate their traces with his own true feeling delicately. In this way, the artist has shown his new understandings and potentials to creations, which reflects a new visual form of modern people, and that water-ink, as a medium, could be a common painting language, becoming free after releasing its heavy outside burdens.
Character water-ink paintings of Shin Young-ho are undoubtedly a successful attempt.



* Liquid drawing · 리퀴드와 드로잉의 합성어로서 수묵의 물성(物性)에 잠재된 표현력과 의미성을 확장, 심화시키고자 하는 예술적 의도에서 비롯된 조어(造語).
· 리퀴드 드로잉은 수용성 재료인 수묵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동양회화의 전통적 인식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과 창조적 해체 작업을 공존시키고자 하는 의미를 갖는다.
· 이를 통해 동·서양 고전과 현대의 회화에서 형성된 독자적인 미의식간의 간극(間隙)을 극복하고자 한다.




시각행보 视觉行走

신영호는 한국현대수묵예술계에서 특정한 영역의 대표성을 갖는 예술가이다. 그는 전통예술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인식을 갖고 있다. 그는 오래된 것들을 수호하려는 그런 보수주의자가 결코 아니며, 옛 것을 현재의 것으로, 역사로부터 출발하여 현대생활과 심미적 요구를 결합시키고, 자신의 분명한 예술언어와 개성적 물상표현을 융합한다. 우리는 전통의 우아한 정서의 호응과 함께 성공적으로 실현한 문화적 심미의 상호교융을 느낄 수 있다.
申暎浩是韩国当代水墨艺术界最具代表性的艺术家 。 他对传统艺术有着系统的研究和认识,但他不是那种以古为徒的守成者,他能化古为今,从历史中出发,结合当代生活和审美要求,组合自己的艺术语言,清晰明快的语境、个性化的物像描绘,我们能感受到与传统雅逸情怀遥的呼应,又成功地实现与当代文化审美的互转交融。
최근 들어 신영호는 ‘개미’의 물상으로 , 같은 수묵시리즈 작품을 성공적으로 창작해 냈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보이고, 점으로 면을 이끌며, 하나로 열을 당하며, 생명의 미시로부터 출발하여 자연에 대한 거시적 장면을 다시 발현한다. 묘사된 것은 비록 매우 작은 생명이지만 그것이 공중에 매달리건 혹은 나무덩굴 사이에 놓여지건 간에 거대한 변화무쌍의 경지를 보여준다. 만약 전통에 대한 입신의 체험이 없었다면, 이런 경지를 보여주기 힘들며, 경건하고 냉정한 사색이 없었다면, 이러한 성과는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近年来 , 申暎浩以蚂蚁为物象,成功地创作出了《 液体素描4530 》 《液体素描4515 》水墨系列作品 ,以小见大,以点带面、以一当十,从生命微观出发再现自然生命的宏大壮观。被描述的虽然是微小生命,但无论它着落在空中还是藤蔓之间,都反衬了生命巨大空灵。如果没有对传统出神入化的体会和磨练,很难做到这样的境地,没有虔诚的静思冥想,很难有这样的成果。
개미는 점으로, 산과 돌과 꽃잎은 면으로, 시지각의 세계를 평온하게 만들면서 문화적 심리의 감응을 이끌어냈고,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명확히 드러냈다. 오늘 보여주는 전시는 그의 새로운 단계의 창작이다.
以蚂蚁为点,山石花叶为面,平稳了视知觉的世界,获得了文化心理的感应,彰显了对传统的新解释,这是申暎浩艺术的成就和贡献。今天展现给大家的,是他创作的一个新阶段 。
신영호는 사유하는 예술가다. 그는 전통이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전통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언어와 필묵에 융화시킴으로써, 형태상으로는 대단히 전통적이지만 지극히 현대적인 도식을 형성한다. 이런 전환은 지혜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개미는 하나의 생명부호로써 기본이 되는 주제이다. 그것은 배경이 없는 독립된 공간 가운데 출현할 수 있고, 화초와 함께 놓여지기도 하며, 산수화의 암벽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어서 그가 원하는 어떤 공간에도 출현할 수 있다.
申暎浩是思考型的艺术家,他懂得传统 “ 为我所用 ” ,将传统不露痕迹,自然而然地化作了自己的语言和笔墨,形成了一种形态上极为传统又极为当代的图式,这个转化需要智慧和能力、在他作品中,蚂蚁是一个生命符号,基本的主题,它可以出现在没有背景的独立空间中、也常与花草并置,也可以行走在山水石壁上,可以出现在它愿意出现的任何地方。
이러한 생명의 점은 매우 클 수도 아주 작을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집중될 수도 있으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하나의 선처럼 시각적 공간을 오고 갈수도 있다. 신영호는 서예에 대한 심도 있는 깨달음이 있으면서도 서예에 대한 성과를 드러낸 적이 없다. 그는 서법의 선조와 절주 등의 요점의 정수를 성공적으로 회화작품 안에 녹여냈다. 개미의 행보는 바로 마음속 길의 행보이고, 예술 관념의 행보이다.
这些生命的点可以放大也可以宿小,可以分散可以集中、它像断断续续的线穿梭在视觉的空间中。申暎浩对书法有着精深的体悟,但他从来不提自己书法上的成就,他把书法线条、节奏等精髓要义成功地化解到了绘画作品中,蚂蚁的行走就是心路的行走,艺术观念的行走。
그는 제백석예술을 좋아하여 정미함과 웅대함의 대비적 융화에 찬동한다. 정밀한 파악을 위해 그는 실제로 개미를 키우기도 하였는데, 매일 관찰하고 때마다 기록을 했다. 제백석과 다른 점은 신영호의 연구는 생명의 행보와 심리감각의 관계에 그 중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제백석예술과 공유 되는 바가 있지만, 신영호는 심리적 부호와 시각적 충격을 더욱 강조하는 면에서 그들의 물질에 대한 인식은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他欣赏中国齐白石的艺术,赞同精微与博大的对立融合,为了把握细微,他甚至调养蚂蚁,日日观察,月月记录。与白石老人不同的是,申暎浩研究的是生命行走与心理感受的视觉关系,他与白石之间的艺术虽然有相约性,但他们对于物的认知不同,申暎浩更强调心路的符号,视觉的冲击。
‘개미’는 신영호의 볼 수 없는 사상을 보여주는 도상이며, 백석노인은 전통의 ‘시(詩)’에 의탁하고 ‘경(境)’을 도상방식으로 삼아 세속화한다. 신영호가 묘사하는 물질과 의경 사이에는 전통적 의의상 시학에 대한 의존은 결코 없다. 표면상으로는 일치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작품 가운데에서 또 다른 더욱 확장된 세계와 비가시적 사상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현재적 형태 아래의 의식부호와 행보에 가려진 사상이다. 아름다운 화면 배후에는 소리 없는 격정과 언어가 감춰져 있다. 현대작가로써 신영호는 시대예술의 정신과 언어의 문제를 제기하고 탐색하고 있다.
“蚂蚁”是申暎浩无法可见思想的可见图像,白石老人依托的是传统“诗”境,将“境”以图像方式世俗化 申暎浩描绘的物与境之间并不是传统意义上的诗学依存,尽管表面上是一致的,我们从他的作品中看到了另外一个更旷怡的世界,看见了看不见的思想,一个现在形态下的意识符号,行走的不可见思想,可见的美丽画面背后隐藏了无声的激情与词语,作为当代画家,申暎浩提出和探索着时代艺术的精神和语言问题。
그의 사랑스러운 개미는 사람들 마음속으로 진실로 들어오면서 보이지 않는 사상을 사랑스러운 부호를 통해 우리의 눈앞에서, 미술관의 벽면에서 평온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미술관을 떠날 때 그의 작품은 함께 미술관을 나온다. 이 개미들은 당신의 시각행보를 따라 걷고, 당신의 생각을 휘감으며 우리 주위에 머무를 수 있다.
他可爱的蚂蚁不仅真实地倾入到了人们的心里,让不可见的思想通过可见可爱的符号出现在我们的视觉中,平静地安置在墙面上,当我们离开美术馆的时候,这些蚂蚁也以同样的方式离开了美术馆,他的作品会跟随你的视觉行走,萦回在你的思想里,让我们挥之不去。
신영호와 그의 예술은 독특한 화면과 사상으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로 하나의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 냈다. 申暎浩和他的艺术以独特的画面和思想成功地化为了新时代的艺术范例。
항주에서의 첫번째 개인전을 축하한다. 祝愿他杭州首展圆满,快乐。
2016년 2월2일 하이델베르그에서. 뤄치 洛齐2016年2月2日于海德堡